Faithbook
목회서신_“4월, 잔인한 달이 피워내는 꽃” 본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음에도,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겨울의 얼어붙은 침묵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상처들이 봄빛 아래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햇살은 분명 우리의 살결을 따뜻하게 녹이지만, 마음속 깊은 아픔까지는 쉽게 치유할 수 없듯이, 4월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도 봄의 설렘과 함께, 사순절의 깊은 묵상을 거쳐 고난주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우리도 무게가 실립니다.
올해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 이 의미 깊은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겨울 내내 땅속에 감춰진 뿌리가 조용히 봄을 준비했듯이, 우리 안의 믿음도 보이지 않는 침묵과 고난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 변함없는 사랑은 우리의 가장 어두운 순간까지도 품어 안아주셨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소망의 여정입니다. 땅속 씨앗이 껍질을 깨뜨려야 새 생명을 틔우듯, 우리도 삶의 고통 속에서 깨어짐을 경험하며 주님의 생명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제 곧 고난주간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 앞에 다시 한번 무릎 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듯이, 십자가는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길이 마침내 부활로, 새 생명으로,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겨울 뒤에 반드시 봄이 오듯, 주님의 고난 뒤에는 부활의 찬란한 아침이 기다립니다. 우리 삶의 모든 고통과 눈물도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 아픔의 순간마다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고난 가운데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며, 이 '잔인한 4월'의 아픔 속에서도 결국 라일락과 같은 믿음의 꽃이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이 봄이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넘어, 우리 영혼의 깊은 회복과 내면의 부활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거룩한 여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나는 변화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곧 밝아올 부활절 아침에,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쁨 가득한 고백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정말로 살아나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함께 걷는 이 여정 위에서, 주님의 깊은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걸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길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