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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Jake's Blog 2025. 3. 2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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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요한복음 9장 1-7절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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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직설적인 제목인데요, Why? 즉, “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 혹은 유능한 기업에 관한 책을 보면, "왜" 라는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고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점은 바로 Why 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면 좋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왜 라는 질문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놓고도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여 실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좋지 않은 결과라고 합니다. 

왜인지를 알았다면 실행을 해야한다는 다소 단순한 진리이지만, 우리 삶에, 그리고 때로는 우리 신앙에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관한 내용을 알았다면, 이제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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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이야기한적이 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쉬멜로우 챌린지’ 인데요, 스파게티 면과 테잎과 마쉬멜로우를 나눠주고 가장 높게 쌓아올리는 팀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여러 그룹들에게 이 과제를 동시에 나눠주고 주어진 제한시간 내에 탑(구조물)을 쌓으라고 했는데요, 여러 팀들이 참가했습니다. 간단한 게임이지만, 게임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참여한 팀들을 직업군으로 묶었기 때문인데요,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경영대학원 학생, 변호사, 유치원생, 건축과, 회사대표 등이 참가했습니다. 

게임은 간단했지만, 그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순위가 어떻게 되었을지 한번 예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 팀들 중에서 누가 꼴찌를 했을까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마도 유치원생들이 꼴찌를 했을거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만일 결과가 그 예상과 같다면 제가 물어보지 않았겠죠. 꼴찌팀은 예상과는 다르게, 경영대학원(MBA)팀이었습니다. 왜 그랬을지 한번 이유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 팀은 어디일까요? 이제 부터는 결과를 보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보다시피 맨 꼴찌는 경영대학원팀이고, 꼴찌에서 두 번째는 변호사 그룹이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인데, 유치원생들보다 낮은 성적을 내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경영대학원과 변호사 그룹은 마쉬멜로우 구조물을 쌓을 때, 토의하는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반면, 유치원생들은 토의하는 과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시작과 동시에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7팀 중에 3등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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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안의 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은 성경을 읽다보면 가장 흥미로운 복음서입니다. 마치계획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한 것 같아 보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일곱 가지 표적이 등장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함 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치심 5:1-18, 

오천 명을 먹이심 6:1-14, 

물 위를 걸으심 6:16-21, 

앞으로 보지 못하는 자를 고치심 9:1-12. 

나사로를 살리심 11:1-46

 

요한복음은 이 일곱가지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합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을 고치신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대부분의 표적들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반면 오늘 본문은 보다 관계 중심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과 앞으로 보지 못하는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오늘 본문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 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다" - 오두막의 편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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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1-5)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의 장애는 인간의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둘째로 그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비참했습니다. 8절 하반 절에서는 그가 구걸로 연명하는 걸인이었음을 기록합니다. 이는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단 한 번도 창조세계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태초의 첫째 날에 창조된 빛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는 날 때부터 지금까지 빛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식하는 당시 사람들의 영적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그에게 오늘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앞서 살펴본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된’이라는 부분을 가리고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길을 가실 때에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보신지라’

성경은 보여졌다가 아닌 ‘보았다‘로 기록합니다. 아주 중요한 표현인데, 놓치지 쉬운 부분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던 예수님의 시야에 그가 우연히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7절에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음을 기록합니다. 이는 성안에 있던 두 개의 (연)못 중의 하나로, 사람들의 왕래가 항상 많은 곳이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그가 금세 그리로 걸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못으로 부터 멀리 않은 곳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구걸로 연명해 온 그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자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 홀로 선 그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인파 속에 그를 콕 집어 보신 것이었습니다. 그 길을 오가던 수많은 이들이 외면하던 그에게 주목하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선이 멈추어 선 것을 알아차리고는 곧장 질문했습니다.

 

(2-3)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 당시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장애를 당사자의 죄나 부모의 죄의 결과로 생각했습니다. 죄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처럼 유전자나 환경에 관한 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 시대는 발달된 문명만큼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숙한 만큼 성경도 그리고 하나님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의 장애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신 후,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여기서 ‘낮’은 공생애의 기간이며, ‘밤’은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기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고 있음을 긴장감 있게 말씀하시며, 곧장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12절에서 예수님은 전에도 자신을 세상을 빛으로 소개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는 결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고침 받은 사람과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6-12)

(6-7)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침을 뱉어서 이긴 진흙 자체에는 보이지 않는 눈을 치료할 약효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하신 것은 말씀의 순종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괄호를 통해 실로암의 뜻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밝은 눈으로 왔다 즉, 어두움을 벗어나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그는 주님을 만남으로 마치 아기가 태어날 때처럼 자기 인생의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어둠 속을 살던 한 사람의 삶에 빛이 찾아드는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오랜 시간도 고칠 수 없었던 그의 문제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힘입어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예수님만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지켜보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일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은 즐기면 그만이겠지만, 어렵고 힘든 일은 도대체 왜?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인생이 불행해집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런 고통 속으로 몰아 넣으실 수 있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다못해, 이제는 불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명쾌한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단순하지만 강력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바로 신뢰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한다는 것은, 좋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나, 기쁠 때나 때로 슬플 때에도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뢰의 뜻]

성경 안에서 쓰여진 ‘신뢰'의 뜻은, ‘피난처’, ‘피난을 위해 서둘러 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실제로 믿음과 신뢰는 같은 어근이지만, 믿음이라는 뜻에 시간적 개념인, ‘기다린다'는 뜻이 포함된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믿음은 현재, 지금의 상태를 말하지만, 신뢰는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상태의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뢰라는 말을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신의 의지와 삶을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돌보심 안에 두기로 결정하다’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야합니다. 또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신뢰해야합니다. 다음의 질문들을 해봐야 합니다. 

 

1. 첫째, 내가 삶 속에서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의 핵심은 내가 어느 때에라도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따르기로 결정하여, 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다. 우리 스스로가 선한 방향으로의 인도를 원하는 만큼,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 개개인을 위한 선한 계획으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선한 계획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더 크고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계획에 민감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항상 구해야 합니다.

 

2.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은 누가 세운 계획인가? 나는 나의 계획을 내려 놓았는가?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는가?

잠언 19장 21절은 우리에게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스스로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욱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계획을 내려놓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내 계획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또한 어떤 계획이 진정 하나님의 계획이고 어떤 것이 나의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3. 세 번째 질문은, 나의 마음이 새로워졌는가?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뜻은 항상 분명하지 않게 남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경에서 ‘새사람을 입으라’ 라는 말도, 번역하면 ‘새로운 마음의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은 마음의 변화에 대해서 자주 말합니다. 사도바울도 마음의 변화를 겪은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마음의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돌이키다, 돌아오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 세상 기준 등을 따라가다, 이제는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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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멜로우 챌린지에서 전공자 다음 1등이 누구? = 비서 그룹 -> 서포트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룹)

이게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의견을 내었을 때, 그것을 지지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전공자를 제외한 비전공자 중에 1등을 했습니다. 

저는 신뢰가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신뢰한다면, 그것을 지지하고 실행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김소영 집사님의 식사준비, 

안태준 집사님의 의사소통

추용진 집사님, 박상화 집사님의 수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은 어쩌면 교회 생활을 오래 한 직분자들에게 더 필요한 말씀이다.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되어야하고, 하나님의 방식과 맞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보다 하나님께 민감해지는 수준까지 가야합니다. 

 

기존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마음과 생각,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자,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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