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book
다시 부르시는 주님 본문
우리 몸에 여러 신체 기관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안경점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PPT - “몸이 1000냥이면, 눈은 900냥”
이 말을 하신 분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이 일평생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자는 시간을 빼고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좋은 것을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뇌가소성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업을 잇는다는 표현을 합니다. 자녀가 성장하며 부모의 직업을 보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게되면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무엇을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최근에 자주 보고 계신것은 무엇인가요?
PPT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세우시는 주님을 바라보라, 이 말은
우리가 다른 것이 아닌 주님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세워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고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시길 바랍니다.
<본문>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장담했던 제자 베드로는, 닭 울기 전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실제로 일어나자,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작은지를 실감했습니다. 말만 앞서고 그것을 차마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니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차마 주님을 뵐 낯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21장은, 부활 후 며칠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소는 ‘디베랴 호수’, 곧 ‘갈릴리 바다’의 다른 말인데요, 사실 이 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곳, 베드로 자신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고, 자신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자신들도 함께 가겠다면서 베드로를 따라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3년 만에 다시 제자에서 어부가 되어 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까요? 그것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더 그랬습니다.
어부출신의 사회 하층민에 속했던 제자들, 베드로는 주님 만나서 3년 반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면, 자신도 어깨가 으쓱하며, 바로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한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그 구원의 비밀 앞에 그의 믿음은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켜버렸습니다. 믿음이 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 죽는 곳까지 따라가겠다고 말했던 베드로는 자신의 신변이 위협당하자,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종의 한 마디, "너도 저 예수와 같은 무리가 아니냐?" 이 한마디에 두려워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남아서, 자신이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이 상처가 되어서, 지워지지 않는겁니다.
자신이 정말 사랑했고, 또 목숨 바쳐 사랑하기로 다짐했던 예수님을, 예수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실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도 해를 입을까봐 겁을 먹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는 그 자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데 주님이 부활하신겁니다. 너무 기쁜 일인데, 정작 자신은 예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베드로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 베드로.. 이제 그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 만나기 전의 어부로 자신의 정체성이 돌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한, 나 같은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예수님의 부활에 함께 할 수도, 기뻐할 자격도 없다는,,, 그에게는 비참한 실패감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 후 3번째 나타나시고, 이제는 부활이 확실해 졌을 때,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찾아 온 절망 때문에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기 말이야… 나 이제 다시 고기 잡으러 갈까 해. 나 원래 어부였잖아. 3년 반 전에 사람 낚는 어부 된다는 그 이해도 안되던 말에 내가 한동안 내 분수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제자며, 사도란 말인가. 나는 다시 고기나 잡아야겠네."
비참한 마음으로, 3년 반 전에 주님 따르기 위해 버렸던 배와 그물을 다시 구해서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그 날 마침 한 마리도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제자로서 실패하고, 어부로서도 실패하는,, 그는 비참한 실패의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다가 스스로의 연약함에 걸려 넘어져버린, 주저 앉아버린,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PPT -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라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혹시 그들이 영적으로 어두워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3년 반 동안 쫓았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도 모르고 잡은 고기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그러면 많은 고기를 잡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은 생각 없이 그물을 던졌는데, 밤새 안 잡히던 고기가 갑자기 많이 잡히고,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들 수 조차 없는 겁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상황을 어디서 많이 본 것만 같습니다. 언제일까요?
바로 3년 반 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처음 부르실 때 이랬습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그 날 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순간 비로소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PPT - 7절을 보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베드로가 옷을 벗고 있다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왜 갑자기 바다로 뛰어 들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주님을 뵐 낯이 없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베드로가 굳이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 들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육지로 향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뵐 낯이 없어 다시 그물을 손에 들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정말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여전히 무식한 어부인데, 주님과 3년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주님이 너무 소중하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기까지의 3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이제는 정말 주님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 부활하셨다는 소식에도 찾아뵐 수 없었는데, 오늘 주님이 자신들을 찾아오셨다는 소리에,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소리에 자동으로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8절에 오십간이라고 하는 거리는 약 90미터를 의미합니다. 노를 저어 가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마음으로 베드로는 헤엄쳐서 주님께 나아 갔습니다. 8절에 보면 다른 제자들은 배를 타고 육지에 오른 것으로 보이고, 베드로는 헤엄쳐 육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까지 육지에 도착해보니, 숯불이 피워져 있고, 생선과 떡이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떡과 고기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숯불은 바로 피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미리 오셔서 지친 실패의 밤을 보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 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감과 죄송함에 고개 못 들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것을 먹이셨습니다.
10절에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자, 그것을 가지고 온 사람은 누구인가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슨 말만하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장 다른 제자들보다 마음이 어려웠을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나지막히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주님은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 주님께서 지어주신,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만일 그를 반석이라고 불렀으면 아마 마음 어려워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렇게 불릴만한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PPT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Yellow)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White)
“내 어린 양을 먹이라.” (Yellow)
그래서 베드로의 원래 이름을 부르시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이 때 베드로의 대답은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아십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함께 죽겠다던 자신이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절망하여 다시 예전처럼 고기 잡으러 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애매한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면서 다시금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16절에 두 번째 다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며, 또 다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대답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17절 - 세번째, 예수님이 다시금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니 베드로는 갑자기 근심합니다.
그리고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세 번의 대화가 오고 가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시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한 밤 = 처음 제자로 부름 받던 날
예수님과의 식사 = 최후의 만찬
떡과 물고기 = 오병이어 사건
숯불 =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던 날
새벽 = 3번 부인하고 닭이 울었던 날
1)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 날과 같이 오늘도 아무런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2) 그리고 3년 반 동안 함께 예수님과 동거동락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3) 예수님이 먹이신 생선과 떡은 오병이어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4) 그리고 사실 숯불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밤, 베드로가 추위를 피해 숯불 앞으로 가서 불을 쬐고 있을 때, 사람들이 네가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물을 때, 그는 숯불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5) 그리고 그 때 날이 새며 닭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닭이 울며 날이 새어가는 때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에 베드로는 근심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자기가 세 번 부인했었으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용서해주시려고, 똑같이 세 번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잖아요...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겨우 이 정도라는 것을 주님 이미 보셨잖아요."
베드로는 이 마음으로 예수님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전과 동일하게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결론>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데,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나의 어린양을 먹여라."
자신의 사도의 역할을 내 팽겨친 베드로에게, 다시금 사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주님은 여전히 부족한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길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한계와 실패를 경험하며 주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사명을 맡기셨고, 이후에 베드로는 한번 설교할 때마다 삼천명씩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뭐라고 설교했는지 아시나요?
바로 "회개하라" 그는 매번 설교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왜냐면, 그가 바로 죄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다시 주님께 돌아오십시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죄인이지만, 그런 모습 마저도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그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여전히 부족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시길 원하십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기쁜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바라본다면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기가 주저되는 분 계십니까? 아니면 “그래,, 나도 한 때는 뜨거웠었어”라며 과거 여러분의 신앙을 회상하는 분 계신가요?
우리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로 넘어져 있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 손을 잡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신다는 사실이 기쁘시지 않습니까? 감사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부족할지라도, 완전하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