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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물 위를 걷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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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물 위를 걷다

Jake's Blog 2015. 10. 15. 12:43



본문: 마태복음 14장 22-33절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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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본문은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등장하는 본문으로, 제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본문에는 예수께서 제자들 무리를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신 것으로 본문의 내용이 시작된다. 본문처럼, 예수께서는 종종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셨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중대한 일이 있을때마다(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삶의 한 부분을 떼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는 아마도 바람과 물살로 인하여, 뭍에서 꽤나 떨어지게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배경과 단어의 용례로 보아 '수리'라는 표현은 약 4km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배는 이미 육지로부터 꽤나 떨어져버렸고, 제자들은 아마도 바람과 물결로 인해 곤경에 쳐한 상황일 것이다. 


3.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로마는 밤을 4개의 시간으로 구분하였다.(유대인들은 3개로 구분) 저녁 6시부터 9시까지가 1경, 9시-12시가 2경, 12시-3시는 3경, 그리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이 바로 4경이다. 제자들은 그 늦은 시간까지 바람, 그리고 물결과 씨름을 했을 것이다. 더우기 그들 중에는 어부 출신들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하여 육지로 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4. 그런데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배를 향하여 걸어오신다. 고난 가운데 반가울 것만 같은 예수님의 오심은 오히려 제자들을 깜짝 놀래킨다. 왜일까?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놀랐을 것이다. 어둡고 안개까지 끼었을 당시 상황에서 육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것도 '물 위'를 걸어서 다가온다는 것은 충분히 제자들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을 수 있을 것이다.


5. 이 본문은 오병이어 사건 직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님의 놀라움을 충분히 경험하고 목격했을 제자들인데 그들에게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은 아마도 생소했나보다. 그들은 그렇게 따르고 존경하던 예수님을 향해 '유령'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향해 '안심하라'고 말씀하신다. 


6. 여기서 '안심하라'라는 말은 '담대하라', '용기를 내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에서 고난을 만나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님을 향해 기도하며 마음이 평안해지길 소망하고 있다면, 우리는 기도하는 동시에 용기를 내며 담대해져야 한다. 우리의 담대함과 용기 가운데서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 


7.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주님께 이야기한다. 여기서 베드로를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는 예수님께 요청을 드릴 때, '나로 하여금 물 위를 걷게하소서' 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해주실 것을 요청하며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그는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던 순간에도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다. 


8. 예수님은 베드로의 요청에 응답하시면서 '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끝나면서 신기하게도 베드로는 정말 배를 떠나 '물 위'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이 본문에서 '배'는 풍랑에서 제자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하지만 배를 나와야만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대상을 배에서 예수님으로 바꾸면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용기를 낼 때, 담대해질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참된 안식'을 얻을 것이다. 


9. 하지만 물 위를 잘 걸어가던 베드로는 갑자기 자신의 관심이 바람으로 바뀌면서 무서움을 느꼈고 물 속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쳤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의 심정은 아마도 자신이 빠져가고 있는 물 속에서 나오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구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여전히 물 속에 머물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여전히 누리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까지도 경험하고픈 욕망의 일종인가? 아니면, 정말로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빠져나와 주님께서 내미신 손을 붙잡는 것인가?


10.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셨다. 그리고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적은 자'라고 표현하신다. 여기서 '믿음이 적은 자'라는 표현은 신약 성경에 5번이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모두 제자들을 향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믿음이 없는 불신자에게 사용된 단어가 아니라, 주님을 더욱 잘 믿어야하는 제자들에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믿음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을 강조한 표현이다. 


1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냐고 물으시며, 함께 배에 오르는 순간 지금까지 불었던 모든 바람은 거짓말처럼 그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물 위에서 바람 속에서 밤새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순간 바람은 멈췄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마음의 배'에 예수님을 모셔야한다. 


12. 하지만 이 본문에서 특별히 주목해볼만한 사실은, 베드로는 물에 빠질 때, 예수님께 '구원해주소서'라고 말을 할 수 있을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물에 빠져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을 것같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무엇인가에 빠질 때는 일반적으로 천천히, 때론 인지하지 못할 만큼 서서히 빠지게 된다. '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에 서서히 빠져가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할 것이다. 


13. 그리고 특별히 이 본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주셨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배를 떠나 예수님의 손이 닿는 곳까지 잘 걸어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가 바람에 무서움을 느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14. 왜냐하면, 아마도 이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자신이 지금껏 의지했던 '배'를 떠나서 진정한 의지의 대상이신 주님께 도착하기 전인 중간쯤, 다시 말해 세상 안에서, 믿음 안에서 의지할 곳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순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사실이다. 굳이 예수님 앞에까지 도착해서 그는 왜 의심하기 시작했을까? 


15. 본문에서 사용된 '의심'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갈라지다', '이중적으로 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 갈라져 이중적이 되었을까? 그는 어쩌면 여전히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해 나아가지만, 마음은 세상적인 일들에 염려하며 두려워했을 수 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세상 안에서의 일들로 더욱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16. 두 번째 가능성은,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되고.. 예수님께로 점점 다가가, 그 분의 손이 닿을만큼 가까이 다가가 물 위에 서서 예수님을 마주하며 서게 된 순간.. 혹시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예수님 때문에' 된 것보다 '예수님 처럼' 된 것에 집중하며 어쩌면 예수님과 동등해진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17. 우리가 높아지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베드로처럼 가라앉게 될 것이다. 단지 예수를 등에 업고 잘되고 싶은 마음에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면, 그 따르심엔 생명이 없다. 사실 당시 제자들 역시도 정치적 메시야를 고대하며 정치 권력에도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경계하셨다. 현대 기독교에서도 '축복'을 구하며, 믿음을 통해 풍요를 누리는 것에 초첨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18. '긍정의 힘', '잘되는 나' 등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잘 될것이다는 말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러한 관점들을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 천국이 아닌 '현세'에 소망을 두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에 사역을 하는 동안, 풍요를 누리거나 권력을 차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닮기 원한다는 우리의 고백 속에 담긴 진심은 무엇일까? 우리의 마음에 드는 특정한 어떤 점들만을 닮고 싶은 것은 아닐까?


19.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물에 빠졌다. 아니.. 베드로만 물에 빠졌다. 다른 제자들의 눈에는 그저 나서다가, 까불다가 물에 빠진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내밀어 주신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깨뜨린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결국, 어부였던 베드로는 자신이 물에 빠지는 것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다. 


20. 어부가 물에 빠진다는 것은 '실수' 혹은 '실패'를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는 종종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워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실패' 속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에 더욱 초첨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의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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