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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3장 성경공부

Jake's Blog 2015. 7. 23. 12:43



요나서 3장 성경공부

1.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욘3:1-2) 요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리 기쁜 기회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정말 하기 싫었던 일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 하지만 요나가 이전에 불순종 한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빨리 임무를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정한 임무를 실패한 사람에게는 보통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요나는 금새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우리는 두 번째 기회를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엔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한 예가 많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롯의 아내 등)

 


3. 하지만, 하나님의 지속적인 명령은 요나에겐 동시에 기쁜 소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마도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을 때, 선지자로서의 정체성이 계속해서 유효한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해야 할 선지자였던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부인하고, 주어진 임무의 수행여부를 자신의 뜻대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내려진 명령을 통하여 요나의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요나의 선지자 직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4.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욘3:3) 본문에 의하면 니느웨는 삼일 길, 곧 결코 작지 않은 도시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니느웨 성읍은 그 둘레가 약 100km, 인구는 12만명 이상(4:11) 혹은 60만정도로 추정한다. 게다가 이 도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홍수 직후 노아의 증손자인 니므롯이 이 도시를 건설과 연관이 있다. (창10:8-12) 하지만 4절에 의하면 요나는 겨우 하룻길을 행하여 외쳤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욘3:4a) 아마도 니느웨의 인구 30% 미만이 요나의 선포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 게다가 요나의 선포는 주목할만하다.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대상들의 죄목을 열거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선포는 심판의 이유와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단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b)라고만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지자로서의 정체성이 유지되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충성스런 선지자’가 아니라 '마지못해 끌려 온 선지자'였다. 

 

6.성경에서 40일은 언제나 비중 있게 다루어진 날 중의 하나로서 주로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노아의 홍수 때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40일 동안 비가 왔다.(창7:4,12)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 돌판을 받기 위해 40일을 시내산에 있었다.(출24:18) 그리고 엘리야는 40일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다.(왕상19:8) 또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40일을 금식하셨다.(마4:1-11) 요나의 선포는 비록 짧았지만, 40일이라는 기간은 충분히 위협적이기도 하다. 

 

7. 당시 앗수르와 북 이스라엘을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니느웨라는 발달된 도시에서 요나라는 사람은 니느웨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온 듯한 인상을 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나가 예상했을 법한 조롱이나 무관심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요나의 기대와 예상과는 달리 니느웨 사람들은 그 짧은 한 마디에 회개하기 시작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3:5) 

 

8. 그리고 그 소문은 금새 왕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욘3:6)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는 것은 통상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며, 재를 뒤집어 쓴다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상징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왕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니느웨 전역에 명령을 내렸다.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욘3:7-8)

 

9. 니느웨 왕이 명령을 내리면서 했던 말은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욘3:9) 이 말은 우리에게 다윗을 연상시킨다. 다윗은 갓 태어난 아들이 죽어갈 때, 금식하고 울고 예배하고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삼하12:22) 니느웨 왕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마음의 급격한 변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결국, 하나님은 난폭하고 오만한 성읍을 겸손해지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10)

 

10. 니느웨의 이러한 변화는 요나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로부터 처음 명령을 받았던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고, 배 위에서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히고, 바다에 던져졌는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그 뱃속에서 기도하다 3일만에 육지로 토해진 요나의 경험, 혹은 니느웨까지 가기 위한 요나의 과정에 비해서, 니느웨의 회심은 의외로 간단했고,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하나님도 금새 심판의 뜻을 돌이키셨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실패자이며 도망자였던 요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축구 감독이라면 실수로 득점 기회를 놓쳐버린 선수에게 시합의 중요한 대목에서 다시 공을 주겠는가? 요나의 두 번째 기회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11. 요나서에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던 일이 단지 니느웨의 변화였다면 아마도 이 요나서는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요나서는 니느웨의 회심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은 니느웨의 변화 그 이상의 숨은 목적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변화보다 요나에게 더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 이미 다시스 행 배를 타고 멀리 떠나버린 요나를 다시 불러 니느웨로 또 보내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는 일임이 분명하다. 다른 충성스런 선지자를 보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일꾼이 하는 일보다 그 일을 해내는 일꾼에게 더 관심이 있으셨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래오셨다. 요나서에 있어서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니느웨’가 아니라, 분명 ‘요나’였다. 

 

12. 우리도 살다보면 우리가 맡은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맡은 일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을 확률이 높다. 하나님도 요나같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꾸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다. 내가 잘할 수 없는 환경과 일임에도 자꾸 반복적으로 우리 앞에 무언가를 가져다 놓으신다. 우리는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의 목적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 과정 안에 분명 하나님의 목적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변화가 아니라, 요나의 변화를 원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맡기신 일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13. 하나님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 목적을 우리의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그저 몇번의 신앙적인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자그마한 상자 안에 가두기 일쑤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깨뜨리고, 보다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우리 삶을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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