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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설교: 아브라함, 깨달음을 얻으며 본문

성경인물/아브라함

창세기 17장 설교: 아브라함, 깨달음을 얻으며

Jake's Blog 2020. 10.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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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관점’이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때로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사건 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같은 경험을 가질지라도 어떤 사람은 동일한 사건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결국,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감정과 해석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별히 사랑에 빠지게 되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흔히 눈꺼풀의 씌었다고 표현하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어느 한 쪽 면에만 치우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을 '절대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눈에 뭐가 씌인 사람은 오직 한 쪽 면만을 바라보게 되고, 때론 무모해 보이는 행동까지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상황과 현실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더 근거하는 행동입니다. 

 

[창17장 본문설명]

창세기 17장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어떠한 깨달음을 얻고 오직 한쪽 면만을 바라보며 꽤나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17장은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17장 사건을 통해서 정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7장 1절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신 것으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을 떠났으니까 이제 가나안 땅에 도착한지 24년이 지난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확증을 4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해주는 장면입니다. 보통 약속을 반복해줘야 할 때는, 그 약속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며, 아브라함도 다시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 역시 오늘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선 5절을 함께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람(ram)’은 ‘좋은’ 이라는 뜻이고, ‘라함(raham)’은 ‘모든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7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너의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그리고 11절에 언약의 증거를 요구하십니다. 지금까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오히려 증거를 요구하십니다.

창세기 16장 내용을 돌아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증거를 요구하며,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불평했고, 결국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낳을 것을 결심하여,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16장) 하지만 결국, 그는 하갈이 내쫓기는 것을 내버려 둠으로써 거의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6절에 다시 한 번 약속을 반복합니다. 그 내용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모든 나라의 어미가 되고, 모든 민족의 왕이 그에게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무 큰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그는 왜 믿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이 보기에 그것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어떤 징조도 보여주지 않으셨고, 이제 거의 100세가 되어서 자녀를 갖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변화]

그런데 오늘 본문 뒷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행동이 좀 이상합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22절과 23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그리고 27절을 보면,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할례를 받게 합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도 조금 의아한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좀 더 의아합니다. 아브라함의 행동에는 큰 의문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재 이해]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는 부족국가의 형태로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브라함을 족장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족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이 부족에는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하여 때로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부족 간의 전투를 대비해야 합니다. 14장 14절에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해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조카 롯을 구하기도 합니다. 즉, 실제로 부족 안에는 전쟁을 위한 인원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대에서 '할례'라는 것은 큰 수술입니다. 그런 상황으로 볼 때, 그것을 동시에 일제히 모든 남자에게 실시한다는 것은 외부 적으로부터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정보가 새어나가서 누군가가 쳐들어오면 큰일 나는 겁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룹을 나누어서 순서대로 할례를 실시하는게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니까 이런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4번째 약속입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약속을 잘 믿었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4번이나 반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17장의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려서 웃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아이를 나을까.. 생각하면서 이스마엘이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로 볼 때, 과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잘 믿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불가능하다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돌변하여 모든 남자를 불러다가 할례를 합니다. 이것은 믿은 것입니다. 믿어도 너무 확실하게 믿어서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갑자기 왜 변했을까요? 20절과 21절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20-21절에서 중요한 부분은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심중(마음 속)의 말을 들었다는 것과

2. 그리고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내가 네 말을 들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장 30절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원래 불임가정이었습니다. 12장 1절에 첫 번째 약속을 받고, 13장에서 2번째, 그리고 15장에서 3번째 약속을 받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반응은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나는 자녀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집에서 기른 자가 내 후사가 될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을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짐승을 반으로 쪼개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400년 뒤에 돌아오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횃불로 지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지나갔다는 말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속으로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16장에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지 않으시면,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얻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때가 가나안 땅에 온지 10년이 지났을 때이므로, 10년간 기다렸으니 이제는 나의 힘으로 자녀를 얻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갈은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신을 했다고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무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는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와서 “내가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한다.”면서 아브라함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은 사래에게 당신이 좋을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행동에 의하면, 이제 이스마엘이 상속자, 즉, 약속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래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고, 하갈은 도망을 치게 됩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약속을 잘 믿었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 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갈은 집으로 돌아오고, 아들을 낳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그 때가 아브라함 나이 86세라고 16장 마지막 절(16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등장하는게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4번째 나타나셔서 16절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셨더니 17절에 아브라함이 웃습니다. 내가 백살이고 사라가 90살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 그리고 하는 말은 "저는 이스마엘이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사라가 아들을 나을 것이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해라 그리고 나는 이삭과 언약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20절 21절의 말씀 이후에 아브라함은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안에 모든 남자를 부릅니다. 집합! 그리고 모두 할례 실시! 이런 이상행동, 조금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20절과 21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17절에 아브라함은 웃으며 마음 속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아이를 낳냐고 말이죠. 그리고 이스마엘이나 잘살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낳게 될꺼라고 말씀하시고, 이스마엘에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번성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들으신다’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 이름을 많이 부르지 않습니까? “이스마엘아~ 이스마엘아~”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은 들으신다야~ 하나님은 들으신다야~” 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일 하나님은 들으신다고 말해왔던 사람인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이 엎드려서 마음 속에 했던 말을 하나님께서 정말로 들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스마엘의 이름 뜻이 "하나님은 들으신다" 였습니다. 

사라에게 쫓겨나서 광야로 나갔던 하갈, 이스마엘을 임신했을 때, 그녀가 살아 돌아 온 것도 하나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삶의 다양한 순간마다 기도를 들어주셨는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속으로 했던 말을 들키면서, 그리고 이스마엘이라는 단어가 중복되면서 아브라함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갑자기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남자 집합, 할례 실시!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다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본문의 적용]

여러분,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항상 우리 삶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때로 기도가 즉각 응답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젊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때 응답해주셨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응답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낳았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깨달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인정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지금껏 자신의 모든 기도를 들어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라 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이야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는 유고슬라비아 출생으로 난민과 기아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하루는 그녀가 former CBS anchor Dan Rather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인터뷰가 굉장히 유명해졌습니다. 

댄래더 - 수녀님은 기도할 때, 하나님께 뭐라고 하시나요?

테레사 - 저는 듣습니다.

댄래더 - (약간 당황하며) 아....그렇군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테레사 - 그 분도 들으세요..

이 인터뷰가 당시 굉장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난민과 기아의 울음과 고통을 들으셨고, 테레사수녀는 하나님이 들으신 그 고통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곳에 가서 자기 모든 일생을 그들을 위해 바친 것입니다.

 

[개인간증: 아프리카 단기선교]


저는 2010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사실 선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를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를 간 이유는 첫 사역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스스로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패를 경험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실패가 두려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첫 사역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서, 아무리 노력하고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을 경험하며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저의 기도제목은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면 사역의 열매, 부흥을 허락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1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7월 쯤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한명씩 한명씩 오더니 17명으로 시작했던 교육부서의 어린아이들이 처음으로 30명이 넘었습니다. 매주 새로운 아이들이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금새 50명이 되었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칭찬했고, 저는 제가 잘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들의 응답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리카에 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프리카 간다니까 제 친구들이 저보고 너는 진짜 안 어울리는 짓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신학교 간다고 할 때도, 저랑 신학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프리카를 간다니.. 참 안 어울리게 산다고 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 말이 듣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때론 세상 앞에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서 사람들의 비난과 하나님의 응답을 맞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의 자아가 내려가고 하나님이 높아질 때, 나의 무력감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고 깨닫게 될 때, 그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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