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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설교: 아브람, 길을 묻다 (창12:1-8) 본문

성경인물/아브라함

창세기 12장 설교: 아브람, 길을 묻다 (창12:1-8)

Jake's Blog 2020. 10. 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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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 길을 묻다 (창세기 12장 1-8절)


1.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며 갈 곳을 일러주실 때 사용된 동사는 미래형이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the land I will show you' 라고 나와있습니다.

 

2. 히브리서 11장 8절에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우선은 순종하며 길을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3.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이 지금 믿음의 여정, 그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시도 이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모님 때문에 모태신앙이 되었든, 혹은 특별한 이유로 믿음을 갖게 되었든, 어떤 이유에서이건 우리는 신앙생활을 이미 시작해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4.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첫 출발은 우리의 의존 대상을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처럼 내가 익숙하고 언제라도 도움을 얻을 수 사람들이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그 목적을 물어야 합니다.

 

5. 아브람처럼, 우리도 처음엔 하나님의 목적을 모른채 우리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점차 알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처음 집을 떠날 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그 믿음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곧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불확실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믿음의 첫 발을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6. 하나님과 함께 보이지 않는 여정을 떠날 때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 3가지 자세는 아마도 "묻고, 듣고, 순종하는 것" 일 것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질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들어야 하고 순종해야 할 분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묻고, 누구의 말을 들으며, 무엇에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7. 당시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가족과 고향을 떠날 당시는,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원전 약 2천년 전 경으로 추정됩니다. (학자들은 아브람의 출생을 대략 기원전 2166~1940 사이로 봅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데, 청동기의 등장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고, 계급이 발생하였으며,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500년 즈음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고대 근동 지역은 기원전 3,500년 경부터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8. 또한 국가 발전 형태로 보면, 당시 대부분의 국가는 자급자족 사회의 부족국가 형태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쫓아갔다는 14:14의 구절로 볼 때, 부족국가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도 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해주었던 부족을 떠나서 낯선 땅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9. 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던 곳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난 다는 것은 기존에 아브람이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야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존에 자신이 의존하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도 필요합니다. 돈, 명예, 인맥, 학벌, 직장 등 우리가 의존하고 있던 것을 조금씩 버리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10.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12:2)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은 그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축복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민족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개인마다 다르며, 그것은 개인의 상황이나 환경, 본성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11. 또한 3절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3)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믿음의 여정 동안 보호해주실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이제 아브람의 이웃은 아브람과의 관계에 따라 그들도 각각 하나님께 축복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12. 이 말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일지라도 어려운 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3절처럼 아브람은 믿음의 여정 가운데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고난과 시련 가운데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그를 도우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 찾아오느냐는 사실보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13. 본문 4절에서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 나이 75세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은 아브람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떠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란에 집을 짓고 장기간 머물다가 자신의 목적지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하란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은 아브람에게 옮겨졌습니다.

 

14. 당시 하란은 우르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 도시였습니다. 하란은 고대 앗시리아의 수도였으며, 세계 최초로 세워진 대학의 터가 남아있을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던 곳입니다. 어쩌면 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부르심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비슷한 곳, 익숙하고 편한 환경을 아마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부르심대로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5. 데라가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고 여겨지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여러 족장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족보가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5장에는 이삭부터 시작하는 족보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25:19) 또한 37장에는 야곱의 족보도 등장합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37:2) 이렇듯 창세기에서는 구속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는 중요 인물을 시작으로 족보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16.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창세기 어디에도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족보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그의 아버지인 데라의 족보가 11장에 등장합니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11:27) 그러므로, 창세기의 흐름 안에서 데라가 중요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 처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아브람이 아닌 데라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믿음의 조상은 데라가 아닌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순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종'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17. 본문 5절에서 아브람은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을 합니다. 하지만 6절은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아브람이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포기하며 어려운 부르심 가운데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그냥 주어지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했던 땅은 이미 주인이 있었으며,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 땅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꿈과 소망을 이뤄나가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18.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하는 환경을 허락하시곤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이해하고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믿음을 쌓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적 앎은 우리가 처한 환경 뿐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19. 본문 8절에서 아브람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어느것 하나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브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혹은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아브람은 하나님께 다시 물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여정은 무엇인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이지 않는 믿음의 여정을 떠날 때에 우리에게 중요한 3가지 자세는 아마도 "묻고, 듣고, 순종하는 것" 일 것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질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경청하며 순종해야 할 분입니다.

 

20.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규정해야 합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계시는 분 정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높인다는 개념이 없고 조심스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벌을 주시는 존재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과 같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21. 하지만 하나님을 무서워하거나 혹은 이용하려 하는 것은 친밀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과 무서워하는 것은 사랑의 관계가 아닙니다. 무서우면 생각이 마비되고, 이용하려고 하면 자꾸 뒤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직한 관계 형성은 불가능해집니다. 생각해보면, 자유롭고 정직하지 않은 관계에서 좋은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는 것, 그 분의 뜻을 아는 것, 그 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들은 자유롭고 따뜻하며 진실한 교제 속에서 가능합니다.

 

2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진실하고 정직한 관계를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으며, 때론 고민하고 씨름하면서 정직한 관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믿음의 여정 가운데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길을 물으며 나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도착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길을 물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처럼 불확실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물으며 믿음의 첫 발을 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014년 11월 2일 주일 청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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