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book
"언어의 온도" 본문
언어의 온도
1.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온도가 존재하는 법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라는 개념에 존재할 수 없는 '온도'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서 제목은 우리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한다. 그래서 책의 표지는 이 두 가지 온도를 함께 나타내고자, 뜨거운 빨강과 차가운 파랑이 만난 온기 어린 보라빛 표지를 꾸민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2. 인간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추상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현실속으로 들어간다. 현실 속에 소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선을 '온도'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함으로서 우리는 단번에 서로의 언어가 미치는 상호적 영향에 대한 기준점을 가질 수 있다.
3. 온기있는 언어는 타인의 슬픔을 감싸 안아주는 반면,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여서 상대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는 커녕 오히려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4. 그렇다면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온도는 몇 도쯤 될까? 사람살이와 관계가 서툰 사람들은 상황에 따른 적절한 온도의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온기 있는 글은 위로가 되지만 무심하고 차가운 말과 냉소적인 글을 상처가 되는 법이다.
5. 때로는 뜨겁게 열정적으로, 또 때로는 차가운 냉철함으로 감성과 지성이 적절히 어우러진 말과 글을 사용하고 싶다. 욕조의 수도꼭지를 요리조리 돌려서 물의 온도를 맞추듯, 나도 온기어린 말, 때로는 시원함을 주는 언어를 건네고 싶다.
6. 가끔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어쩌면 우린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7. 특별히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몸뚱아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 쯤은 가슴 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8.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버린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낼지라도 위로를 건넴에는 그리 늦지 않을 것이다.
9.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진짜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가끔은 되살펴야 한다. 소란스러운 것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가치있는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눈을 가린 채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는게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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