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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신앙

Jake's Blog 2016. 1. 24. 17:15


구약성서의 신앙 

저자: 차준희 



이 책의 제목은 ‘구약성서의 신앙’이다. 제목으로만 볼 때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고민이 될 수 있으나, 저자가 쓴 머리말에서 이 책의 저작 의도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이 신학과 목회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과 구약성서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을 하는 것이다. 즉 구약성서의 개관을 통해 목회현장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저자의 말은 한국교회의 구약본문 설교가 많이 부족한 지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저자가 고백했던 것처럼 이 책은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찾긴 힘들다. 구약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파헤쳤다라고 말하기엔 좀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구약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신앙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쓴 목적을 알려줌과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자세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로서 성서를 바라보고, 구약을 전공한 학자로서 구약 본문에 대해 의무감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적합한 자세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해석학의 차이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과거 일제 시대를 ‘침략’으로 말한다. 하지만 일본은 ‘정복’으로 말한다. 과거 역사의 동일한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 것은 그 사건을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구약성서의 내용을 신앙적인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노력은 높이 살만 하다. 


1. 오경과 역사서

   본문에서는 토라의 언급이 가장 먼저 되고,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직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구약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창세기에서의 환경에 대한 언급은 절대성을 가진 말씀을 시대의 상대적 적용이란 점에서 서술한 것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나, 나와 환경이 화해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구원의 완성을 이해하는데 ‘구원의 정삼각면체’의 그림을 통한 이해는 매우 신선하다. 마지막으로 고대 이스라엘 포로기의 역사적, 신학적 위기에 대해서 대처한 여섯 작품의 고찰과 신학적 해명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포로기가 신학적으로는 암울한 시기였을지는 몰라도 신학적으로는 신앙 전승을 집대성하는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해석은 단지 본문 뿐 만이 아니라 구약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제공한다.

 

2. 예언서

   본문에서는 ‘위협의 말’ 대신에 ‘미래선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선택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선포하기 때문에 긍정이나, 부정적 의미를 띄고 있지 않은 후자 쪽의 선택에 동의한다. 또한 이 선포가 조건적 메시지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이미 결정된 사항이란 것은 심판이나 구원이나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또한 아모스에 대해 아모스를 하류층으로 봐왔던 견해에 대해서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상류층에 속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것은 이후 본문에서도 해석에 대한 다른 방향을 제시해 준다. (예 : 유다 땅에 가서 떡을 먹으라는 본문의 해석.)

   그리고 호세아서의 음란한 여인에 대한 견해를 가나안 생산신에 참여한 평범한 여인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당시 바알 숭배는 다산 종교의식상의 성행위가 결부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을 과연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당시의 제사에 참여했다는 것은 윤리의 잣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이사야에서 그루터기를 거룩한 씨로 재해석 하는 것은 앞의 본문의 논조와 거의 흡사하여 전반적 흐름에 대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되며 야웨의 종에 대해 오늘날의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킨 것은 책의 흐름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책의 저술 목적이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저자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거라 생각되어진다. 


3. 성문서

   시편을 하나님의 행동과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응답이라고 표현하며 그림으로 도식화 해 놓은 것과 다음 도식을 도입하며 찬양시와 탄원시로 나누어 설명하였고 탄원시의 5가지 요소와 구체적인 구원행위에 대해 감사하는 감사시, 그리고 탄원시에서 신뢰가 발전해 독립적 형태를 갖춘 신뢰시등 시편을 연역적으로 설명한 것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빠른 이해를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수수께끼라는 표현을 빌어 설교를 위한 메시지의 삽입은 책의 후반부에 가서도 이 책의 목적을 잊지 않게 해주는 좋은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욥기의 고난신학에 대한 이해에서는 우리가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들을 먼저 지적하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 욥의 친구들이 한 말임을 지적하고 넘어간 것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욥기를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욥기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욥기의 결론을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다는 것으로 조명함으로서 욥기의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은 본문의 길이가 짧아 명확한 이해는 부족할지 모르나 기존에 견해의 차이와 해석의 어려움을 보이던 욥기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참담한 상황을 노래한 예레미야 애가서의 탄원시는 이방인의 조롱, 극심한 기근과 기아, 카니발니즘, 그로 인한 신앙적 위기로 다윗 왕조 신앙으 위기, 시온 신앙의 위기를 말하며 그로인해 고난 중에 우러나오는 감사, 즉 소망의 근거를 살펴보고 책을 끝내는 것은 ‘구약성서의 신앙’으로서의 명심해야 할 한 부분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4. 여록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 선 이해되어야 할 중요한 개념인 ‘루아흐’라는 개념에 대해서 출처와 빈도, 다양한 의미들을 고찰해 본 것은 구약성서에 바탕한 신앙을 갖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루아흐는 바람, 사람, 하나님의 루아흐로 나타나며 구약에서는 루아흐의 본질보다는 활동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역사에 관여하시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설교를 위한 구약성경의 이해를 짚어 준 것은 앞의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설교를 위한 정리를 가능하게 하였다. 천지창조에서 2장 4절의 순서가 뒤 바뀐 것을 지적하며 평소 개역한글 이외의 버전으로 읽었을 때, 생겨났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원역사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모습, 자신의 신명을 계시하는 출애굽 시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훈련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간으로 준비되어지고, 사사기는 인간 불순종에 대한 회개를 강조한다. 왕국시대를 지나  분열왕국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심판 선고를 받는다. 또한 포로기에 에스겔, 제2이사야가 구원신탁을 외치며 그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 스가랴, 다니엘등이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결국 신학이라는 학문은 앞서 저자가 말했던 것과 같이 신학과 목회의 가교역할을 감당해낸다는 것은 우리의 위치를 새삼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5. 책을 읽고

   모든 일에는 ‘목적’과 ‘수단’이 있는 법이다. 만일 부산을 가려고 한다면, 부산에 가는 것 그 자체는 목적이 되며, 기차를 탈지 비행기를 탈지의 이동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과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동일하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목적’이 한국교회 강단의 구약의 케리그마적 선포라는 ‘수단’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을 사용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의 폭풍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로렌츠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와 같이 한국 땅에서 나온 구약에 대한 작은 열정이 전 세계에 구약을 향한 폭풍으로 나타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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