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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장 설교: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창35:1, 10-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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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장 설교: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창35:1, 10-13)

Jake's Blog 2020. 10. 2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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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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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중에 ‘El Shaddai’,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신앙고백을 할 때,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의 시작이 2세기 초대교회에서 함께 고백하던 믿음의 내용이었고, 3세기에 정리되어 기본적인 형태를 갖춘 뒤, 10세기에 지금과 유사한 형태로 사용된 것을 보면,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부터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믿음의 고백을 계속해서 해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도신경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신앙 고백인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오늘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 등장하는 본문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35장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야곱 일행을 벧엘로 인도하셨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벧엘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야곱은 오래 전 벧엘에서 고향으로만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이곳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서원기도는 세월이 흐르고, 야곱의 삶이 안정되면서, 서서히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다시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허락하셨고, 그를 벧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린 야곱을, 하나님께서 다시 깨우신 것입니다. 

그런 야곱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매달리지만, 기도가 응답되고, 혹은 삶이 조금 안정이 된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님과 한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가 흔히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 (Hermann Ebbinghaus)는 16년 동안 인간의 망각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10분 후부터 기억했던 것을 잊기 시작하고,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를 잊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다고 해도 기억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망각’, 즉 ‘잊어버리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것을 발명했습니다. 그림으로, 글자로, 요즘에는 조각이나 동영상 등으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하고, 학교 교과서에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기념하고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베푸셨던 사건 뒤에는 항상 이 말이 등장합니다. ‘기념하고 기억하라'.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이 무엇을 하냐면, 그 의미있던 장소에 돌로 제단을 쌓습니다. 일종의 돌탑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중에,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을 기념하여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제단을 쌓았고, 여호와 이레,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위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나중에 이곳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야곱을 벧엘로 인도하셔서, 야곱이 벧엘에 제단을 쌓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비록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기억하셨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우리는 잊더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사람은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결과를 보면 그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을 다시 기억하고, 그 결과 앞에 너무도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잊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셨던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벧엘로 돌아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이 제단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야곱 자신에게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와서 제단을 쌓은 후 크게 두 가지의 일을 겪게 됩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입니다.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유모였던 드보라가 죽었습니다. 드보라는 단순한 유모가 아니었고,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까지도 돌보아 주었던 한 가정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고, 이제 어머니의 유모였던 드보라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야곱에게는 어머니에 관한 모든 기억과 흔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슬픔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이 벧엘에서 겪은 두 번째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제단을 쌓고 예배드린 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축복을 확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창35:10)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부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이제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창35:11) 

야곱의 후손 중에 왕이 나오고 수 많은 백성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약속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엘 샤다이’입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전능하신 하나님' El Shaddai에서 El 은 ‘신'을 뜻하는 단어인데, 그 뜻은 ‘힘', ‘능력'을 뜻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샤다이(Shaddai)라는 단어는 해석이 여러가지인데, 그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풍성함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Shaddai’ 라는 단어의 그 뜻은 ‘부어주는 자', ‘내어주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정반대의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쓸어버리다', ‘폐허가 되다' 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농사에 비가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비가 오면 오히려 재앙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Shaddai 라는 단어에서 유래해서 Shaddim 이라는 단어가 생겨나는데 그 뜻이 ‘우상숭배'입니다. Shaddai는 ‘풍성함'을 의미하지만, 그 뜻이 변질되어, 결국은 ‘재앙'이 되는 것이 바로 Shaddim,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런데 원래 ‘Shaddai’ 라는 단어는 어머니가 아이의 젖을 먹이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집니다. 아기가 울고 있을 때, 엄마 젖을 물리면 갑자기 평화가 찾아옵니다. ‘엄마 품’이라는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할 수 없는 포근함이 있고, 만족감과 풍성함이 있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참 난감하고 어려운 때가 있는데요, 엄마가 딱 들어오는 순간 아이의 표정이 바뀝니다. 품에 안아서 젖을 물리면 방금전까지 울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심지어는 잠이 들기도 합니다. ‘Shaddai’ 라는 단어의 유래를 생각해볼 때,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전능함으로 우리에게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를 위해 전능함을 사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래 아브라함에게서 처음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그의 나이는 90세였고, 사라는 89세였습니다. 그 때까지도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9). 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엘 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처럼,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소망을 주십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17:6).” 

물론 그 이후에도 곧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8:14) 

여러분, 어떻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허락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두가 다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 혹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를'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인 셈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 자신의 환경, 자신의 능력 만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을 넘어, 이삭, 야곱에게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사도바울이 자신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바울의 진심어린 고백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을 메세지 성경의 버전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처음에 나는 장애를 선물로 여기지 못하고 그것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세 번이나 그렇게 했는데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전부이다. 나의 능력은 너의 약함 속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나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이렇게 된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장애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것을 선물로 여기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약함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약점들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나는 그저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길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약하면 약할수록 점점 더 강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중에서)

 

우리의 약함이나, 우리가 놓인 상황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만을 믿으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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