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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 대한 생각]

Jake's Blog 2015. 10.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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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 대한 생각]

1. 어떤 TV 방송에서 자동차 세차의 달인이 등장했다. 그는 세차를 중요하게 여기고, 즐기기까지 하는데, 심지어 광택을 낼 때에도 시중의 일반 왁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10만원대에서 90만원대까지 이르는 자동차용 고급 왁스를 사용한다고 했다.

2. 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출연진 중의 한 여성이 세차의 달인에게 질문을 했다. 질문의 내용은, 자동차가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고급 자동차가 아닌데도, 굳이 이런 고급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3. 이 질문에 세차의 달인이 기분이 상했는지,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여성분들이 김태희나 한가인이 아닌데, 명품화장품을 사용하시는 거랑 똑같아요." 이 대답에 질문을 했던 여성은 상당히 민망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4. 나는 이 짧은 대화를 통해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5.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오늘날, '정의', '공의'라는 개념들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고, 이제는 개인의 생각과 입장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6. 최근 국정 교과서에 관해 나라가 소란스럽다. 국정교과서는 국가 및 정부가 직접 교과서를 발간하는 것을 의미하고, 현재는 검정교과서, 즉 공인채택된 민간 출판사의 교과서를 각 학교별로 적절히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7. 국정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근본적으로 국정교과서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이유는, 이것이 다른 과목이 아니라, '역사', 즉 '해석'이 불가피한 과목의 교과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8.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절대로 순수한 형식의 사실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역사를 기록한 기록자의 마음과 해석을 통해 기록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내용이 아닌, 기록자이다.

9. 그 이유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사람 역시도 자신이 속했던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현대의 기준이 아니라, 기록자와 당대의 시대와 가치관을 반영해서 해석해야한다.

10.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과거 일제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은 그 사건을 '정복'이라고 말한다. 즉, 동일한 사건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관(view of history)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11. 이런 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사관이, 또한 그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역사가 후대에게 얼마나 크고 잘못된 영향력을 주게 될지 정신이 번쩍 든다.

12. 그런 의미에서 사관을 하나로 줄이려는 국가의 시도가 못내 아쉽다. 과목이 수학이나, 과학이었으면 모르겠지만, 해석이 필요한 '역사'라는 점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단 하나의 사관으로 어떻게 균형잡힌 역사교육을 할지 의아하다.

13.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행여나 잘못 해석된 역사로 인해, 후대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할까봐, 혹은 잘못된 교훈을 얻을까봐 우려된다.

14. 최근 한국 주류 대학의 사학과 교수들이 집필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먼저 집필거부선언을 한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13명 전원은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처신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15. 연세대를 시작으로, 경희대, 고려대, 이대, 부산대, 외대, 성대, 시립대 등의 학교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참여를 거부했다. 이 뿐만 아니라, 약 500명의 연구자가 소속된 한국근현대사학회도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16. 학계의 주류 교수 및 학자들의 잇따른 불참 선언으로 볼 때, 그리고 이러한 추세로 볼 때, 결국엔 수준 미달의 학자만 남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부실교과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불 보듯 뻔하다.

17.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정교과서 집필을 강행한다면, 이제는 집필의도를 의심해 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정말 모두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좋은 교과서를 만드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소견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인지 말이다.

18.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만, 졸렬한 지도자는 역사에 기록된 업적을 바꾸어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미래의 역사 안에 살고 있다. 오늘날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려고 하는지, 기록 당시의 시대상은 어떤지 이제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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