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book
주일설교문_“예배사용설명서”(레위기 1:1-9) 본문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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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경읽기와 함께 설교본문을 정하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설교자에게는 본문을 정하는 수고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본문으로 설교를 해야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가 그와 같습니다. 사실 지금껏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설교자인 저에게는 익숙한 본문입니다. 제가 다음달이면 사역을 한지 19년차가 됩니다. 그동안 매주 설교를 하지 않았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아프리카 갔던 1년, 그리고 교구담당 부목사로 있을 때 1년, 다쳤을 때 1년 해서 총 3년 정도 빼고 매주 설교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레위기 본문을 설교 중에 인용한 적은 있지만, 레위기를 본문으로 선정하여 설교했던 적은 딱 1번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읽기 어렵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레위기 통독을 진행하고 있는데, 모든 분들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레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레위기는 우리가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면 들어있는 사용설명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집니다.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다시 용서받을 수 있는 지 등의 사용설명서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건을 처음 사면 설명서를 읽어보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우선은 물건을 사용해보시는 편인가요?
보통 사용설명서에는 가장 처음에 제품의 주요기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세부적인 디테일한 내용들을 기록합니다.
함께 오늘 본문을 보셨지만, 레위기는 번제로부터 시작합니다. ‘번제’ (燔祭, burnt offering)는 짐승이나 다른 제물을 불에 통째로 태워 바치는 종교예식입니다. (燔 불사를 번 祭 제사 제)
또한 번제란‘올라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무언가를 태워서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이 제물을 어떻게 바칠 것인가, 아마도 당시에는 이것을 태움으로 그 태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예물을 받으시길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번제라는 용어를 현대 표현으로 다시 옮기면 결국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가 알고 보면 ‘번제’와 같은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의 제물이 온전히 드려지듯이, ‘우리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살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헌신’이라고 합니다. 헌신 (獻身) 드릴 헌, 몸 신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적 의미에서는 제물을 드리듯이 몸만 드리면 된다고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오심 이후로는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 또한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믿음과 섬김은 먼저 몸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한다거나, 생각만 있는 것을 우리는 헌신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어느 장로님이, 어느 권사님이 헌신적이다 라는 표현을 할 때는 ‘믿음의 행위’가 수반될 때 입니다. 그래서 헌신은 기본적으로 몸이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도 따라야 합니다. 오늘 주보 뒤편에도 글을 썼지만, 오늘날 교회에는 마음 없이 몸만 잘 드리는 직분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어떠한 행위에 과연 내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직분자를 세울 때, 그 의미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보통 큰 교회에서는 장로님 되는게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직장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장로를 시켜주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30년씩 교회 다녔던 분들이 시험들어 교회를 옮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세미나에 가서 들었던 교회의 일화는, 장로 후보자들, 다시 말해 남자분들은 안수집사님으로 연차가 좀 되시거나, 장로 추천을 받으신 분들께 꼭 시키는 봉사가 있다고 합니다. 뭘까요?
화장실 정리와 주차봉사라고 합니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둘 중에 화장실 정리가 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해보면 화장실 정리가 더 낫다고 합니다. 주차는 비가 오면 오는대로 어렵고, 한 여름에 힘들고 한 겨울에도 힘들며, 계속 서 있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그리고 교회가 아닌 다른 여러 조직을 봐도, 누군가의 헌신의 토대 위에 그 공동체가 세워졌고, 세워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예배만 봐도 그렇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잠깐 예배를 드리고 가는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꽤 많은 분들이 예배를 준비합니다. 특별히 예배 찬양팀께서 가장 일찍 오셔서 수고해주십니다. 또 이시간 아이들을 섬겨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헌신’의 마음으로 공동체가 세워지고, 우리 개인의 믿음도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헌신이라는 단어처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혹은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레위기 본문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며, 우리가 구원의 길로 들어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레 1:1-3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회막’은 바로 ‘성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며,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제사 드릴 장소로 지정된 곳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누구든지’는 예배로의 초청이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음을 뜻하며 ‘예물’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는 무언가 드릴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꼭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나는 무엇을 드릴 것인가, 우리의 고민이어야 합니다.
제가 종종 아프리카 다녀온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첫 사역을 놓고 서원기도를 드렸는데 그것이 응답되어 아프리카를 다녀왔습니다. 그 때 저의 기도가 이와 비슷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첫 사역 가운데 은혜를 주시면, 저도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가진 것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20대 청년의 때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일년이라는 시간을 드리기로 서원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성미, 곧 교회에 쌀을 드리기도 했고, 다양한 야채와 채소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화폐를 통용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동식물이 아닌, 화폐를 드리는 것, 우리는 그것을 헌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헌금의 기본 정신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 무한한 은혜를 받는 존재인 우리가 그 감사를 기억하는 의미로 우리의 가진 것,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의 일부를 드리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 정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 사용설명서처럼, 주요기능이 있습니다. 예배의 주요기능이 무엇인가요?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회막’에 나아와서 ‘제사’ 곧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은총과 그것을 유지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회복된다, 다시 관계가 화목하게 된다고해서 ‘화목제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화목제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에서 여러종류의 제사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명령된것은 바로 ‘번제’ 입니다. , 이것은 짐승의 제물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태워서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이런 번제를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리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여호와께서 만족하시도록, 인정하시도록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번제는 ‘그 전부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번제를 드리는 방법
1) 제물에 안수를 함
레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우리가 예배에 참석할 때 “나는 자격이 없지만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내 죄가 모두 없어지고 하나님을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죄가 없어진 것을 ‘속죄’라고 합니다. 죄가 용서받는 것이고 그 방법은 누군가가 대신 죽는 것, 곧 ‘대속’이 됩니다. 그래서 제물의 안수는 대속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배 말미에 헌금기도를 하는 것이 이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물을 받아주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지난 일주일간 살아오며 쌓여버린 죄의 흔적들,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는 여러 행위와 마음들이 씻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의 예물을 드려야하며, 우리가 모여서 무언가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모임을 할 때, 우리의 시간을 드릴 때 동일한 마음으로 시작할 때, 마칠 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 우리의 예배와 드림이 하나님께 열납, 곧 받아지기를 바라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2) 제물을 잡아야 함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여기‘수송아지를 잡는다’는 말 자체가 거칠고 처참한 죽음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인간들의 죄 때문에 흠 없는 동물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장차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실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표입니다(요일 2:2; 갈 3:13).
그리고 잡은 짐승의 피를 단 사면에 뿌리는 것은 하나님께 이 제물이 온전히 바쳐졌음을 보여드리는 공개적인 행위입니다.
3)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뜸
레 1:6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그 다음 과정으로는 이제 가죽이 벗겨집니다. 이것은 겉사람과 속사람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살은 각 부위별로 조각이 납니다. 일차적으로는 잘 타도록 하기 위함이며, 신체의 모든 부분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온전한 마음입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이유는 첫째는 성결의 의미로 가죽을 벗겼습니다. 둘째는 제물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벗긴 가죽은 제사장이 가지고 갔습니다(레 7:8).
가죽을 벗기고 난 다음에는 각을 뜹니다. 팔은 팔대로 가슴은 가슴대로 각기 토막을 내서 제단에 얹어 불을 태웁니다. 이것은 완전한 죽음을 뜻합니다. “나의 고집과 그릇된 생각 생활 전체를 모두 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죽어 나의 팔 다리 머리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바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제물의 각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한 물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물 1리터 안에 독극물 한 방울을 넣는다면, 그 물을 마실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배설물 1그램을 넣는다면, 마실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온전히 드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적당한 거룩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결과 완전한 헌신’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음
레 1:9(상)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는다는 말은 아직도 내장에는 짐승이 먹었던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고 있고, 정갱이 역시 땅에 접촉한 부분이기 때문에 성결상 씻어야만 했습니다(출 20:17).
다시 말해, 깨끗하지 않은 모든 부분은 다 제거해야 함을 말합니다.
5) 제물을 불사름
레 1:9(하)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불살라 번제를 드린다는 말은 제물을 불에 태워서 연기와 김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 위하여 제물의 각 부위를 정성껏 불에 태운다는 말인데 이것은 바로 화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향기로운’이란 말은 불타는 냄새가 향기롭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드림의 행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번제에서는 이 순간이 하이라이트입니다. 그 전까지 준비하고 또 끝난 후 뒷정리하는 순서는 분명 분주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태워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은 매우 수동적인 시간입니다. 준비보다 정리보다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때론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허나님을 바러봐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번제에서 제물을 드리는 것을 여호와께 드릴 향기로운 냄새라도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가리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엡 5:2).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고 로마서 12:1 도 연결해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구약적 관점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완성이고 온전한 예배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신약적 관점으로 보면, 구약의 모든 예배/제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온전하고 동시에 영원한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 문제, 하나님과의 멀어짐의 문제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읽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이 모든 제사의 방식과 그 의미가 모두 합해진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는 자에게 번제가 가능했던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분들에게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요 3:16 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과 가까워지자’ ‘친밀해지자’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제물로 바치는 동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나를 완전히 태워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온전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나오셨습니까?
여러분 매일 아침 어떤 마음으로 눈을 뜨며 하루를 살아가십니까?
영어로 ‘현재’를 Present 라고 합니다. 이 단어에는 ‘선물’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곧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가 선물입니다.
누군가는 과거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는 미래를 준비한다며 현재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가 중요합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금씩 커 가는 아이들, 오늘 이 순간 사진으로 하루를 기록해보시고, 여기까지 우리 삶을 허락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오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혹시 나중으로 미뤄두고 있는 헌신이 있다면, 오늘 다시금 예배의 의미를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드려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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