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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_"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 5장 21-32절, 6장 5-8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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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_"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 5장 21-32절, 6장 5-8절)

Jake's Blog 2024. 8. 2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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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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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세기 5장 뒷 부분과 6창 앞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 노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동시에 ‘은혜’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기독교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는 유신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신론은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을 우리는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도 다시 말해 곧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 신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라고해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믿음을 바탕으로 무신론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유신론 지지자들은 각각 다양신 신들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가까이 있는 일본입니다. 크고 작은 잡신까지 다 포함하면 약 800만 종류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믿는 신이 불의 신이라면, 그 사람은 불을 가까이 할 것이고, 내가 믿는 신이 동물 신이라면 그 사람은 동물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떠한 신을 믿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그에 맞게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유신론에서도 ‘유일신론' 즉 이 세상에 참 신은 오직 한분, 곧 하나님 밖에 없으시다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은 신이 아니고, 그저 신의 형태를 가진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십계명의 내용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빠져 나가기 전에 열가지 재앙이 이집트에 내려집니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소위 ‘신들의 전쟁' 이었습니다. 열가지 재앙의 내용을 보면 각각을 상징하는 신들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1재앙: 피(출 7:14-25) - 나일의 신 `하피'와 `오시리스'(Osiris), 크눔(khnum).

2재앙: 개구리(출 8:1-15) - 헤크트(hekqet: 개구리 머리를 한 탄생, 부활의 신)

3재앙: 이(출 8:16-19) - 땅과 사막의 신 셋(Set)

4재앙: 파리(출 8:20-32) - 파리의 신 우아티트(Uatchit)

5재앙: 가축, 전염병(출 9:1-7) - 암소신 하토르(Hathor), 황소신 아피스(Apis)

6재앙: 독종(출 9:8-12) - 의술의 신 임호텝(Imhotep), 질병의 신 세크멧(Sekhmet).

7재앙: 우박(출 9:13-35) - 하늘의 여신 누트(Nut), 곡식의 신 오시리스(Osiris)

8재앙: 메뚜기(출 10:1-20) - 곡물의 신 세트(Seth)

9재앙: 어두움(출 10:21-29) - 태양 신 라(Ra)와 레(Re), 호루스(Horus), 하늘의 여신 눗(Nut), 하늘의 여신 하토르(Hator)

10재앙: 장자의 죽음(출 11:1-10) - 재생의 신 민(mIN), 출산시 여인을 돌보는 신 헤켓(hekqet)(4월), 어린이 수호신 이시스(Isis), 다산의 신 오시리스(osiris), 바로(일종의 신).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은 다시 말해서, 당시 애굽에서 믿는 이방신들을 하나씩 쳐부수시고 일종의 선전포고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참 신이심을 애굽이라는 강국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가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은혜를 입었더라’ 입니다. 제가 이미 과거에 몇 차례 강조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은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 삶에 은혜가 없으면 그것은 불필요한 지식일 뿐입니다. 장로에 권사에, 3대째 믿음의 가정이라고 해도, 그 삶에 은혜가 없으면 껍데기 뿐인 신앙이 될 뿐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자동차 매니아가 있습니다. 어느 회사의 어느 자동차에 무슨 옵션이 있는지, 엔진은 뭔지 자동차 회사의 역사까지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은 차가 있었지만 한동안 차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그 지식이 자신의 삶에 아무런 적용점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3대째 믿는 가정이라도, 지금 나의 삶에 은혜가 있는가? 이 질문, 이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은혜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곧 우리 믿음의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나에게 은혜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에서 은혜의 정의는 ‘값 없는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내려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은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다가 아니라,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일까요? 성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시각에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듣고 경험하고, 때로는 환상을 통해서 본 것을 말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는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지만 해당 본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노아가 왜 은혜를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용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저 결과로서 그가 은혜를 받았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8장에 보면 그가 받은 은혜와 관련하여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 8:1)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표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부분 입니다. 당시 상황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오직 노아의 가족만 배 안에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멸망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대한 홍수 앞에 노아도 분명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도 그 분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바로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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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인 창세기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영어로 Genesis라고 합니다. '기원(origin)', '시작(beginning)'을 뜻합니다. 그래서 인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려주는 역할을 창세기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본문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창세기 5장 후반을 살펴보았는데, 창세기 5장은 ‘족보'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성경통독을 할 때 굉장히 시험드는 본문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읽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족보 속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족보 서술의 특징이 보이십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할 때의 3번의 숫자가 등장합니다. 몇살에 자녀를 낳아고, 몇년을 더 살았으며, 그리고 몇 살에 죽었는지 3번의 숫자가 등장합니다. 족보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합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죠.

21   에녹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므두셀라, 라멕 모두 이름 뒤에 3번의 숫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오직 단 한번의 숫자만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5장이 끝나고 6장에서 바로 홍수 이야기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기존에 사람 이름이 등장하고 숫자가 3번 나왔던 형식이 깨지게 됩니다. 이것은 다음 번 설교에서 다루겠습니다.

노아가 포함되어 있는 족보에서 눈여겨 봐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녹'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던 시점이 언제인가 보면, 므두셀라를 낳은 직후부터 입니다. 다시 말해서 므두셀라의 출생이 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습니다. 그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입니다.그가 969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니까 그 때 노아의 나이가 몇살인가요?  노아가 600살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 다시 말해서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 7:11-12)

 

바로 홍수가 일어납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시기와 므두셀라가 죽은 시기가 같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던 시기가 므두셀라의 출생한 시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족보 중에서 므두셀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시점이 므두셀라의 죽음이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그 때 그 시기에 살고 있던 사람이 노아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은혜를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노아의 집안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세상에 휩쓸리거나 다른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 안에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3대째 믿은 집안이라도 은혜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을 제가 서두에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안은 세대가 거듭하도록 꾸준히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하나님 안에 머물렀던 집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아가 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잘해서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의 선조때부터 꾸준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머무른 것이 홍수의 때에 그들을 지켜주고 살려주신 은혜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가족예배’도 드리고, 토요일에 ‘가족의 밤'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행사로서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이 혼자 지키기 어려운 것이기에 공동체적으로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족 없이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사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자 형제 자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 고백이 우리의 마음의 고백이면 좋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 중에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는데 미국에 제 가족이나 친척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역하던 교회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출산할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가족이라는 고백이 그저 머릿 속에서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경험되어져야 하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저는 이 고백이 우리 다음 세대들, 우리 자녀들에게서 이 고백이 나오길 바랍니다. 영문은 잘 모를지라도 그들이 어려운 때를 지나갈 때, 노아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었더라.."

어제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와 아내가 만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이 있었는데 그 형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똑똑한 친구입니다.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를 하고, USC 라는 대학에서 박사를 했습니다. 교수가 되고 싶었던 친구인데 박사 졸업하는 해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미국에 거의 모든 대학에서 신규임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왔고 취업을 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3개월 전에 사표를 내고 작은 스타트업에 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잘 맞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런데 전화해서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면서 기도부탁을 하면서 웁니다. 솔직히 자살도 생각해봤다고 말합니다. 제가 화를 냈습니다. 너 왜그래, 정신차려. 내가 알던 김박사 모습이 아니다. 

이 친구 서울에서 다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사람들, 목회자에게 전화하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전화를 끊으면서 우리 다음 세대들, 자녀들이 어려울 때 누구를 찾아올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이렇게 가정별로 고민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추억들이 힘이 되어, 우리 자녀들이 힘들 때, 부모를 꼭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믿음의 가족이 되려고 노력을 해보는 것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믿음 안에서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노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마무리는 ‘므두셀라’ 라는 인물로 하려고 합니다. 구약 초기에는 사람들의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뜻했습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창을 던지는 자’ 입니다. 고대 근동의 설화에 의하면, 각 동네마다 창을 들고 수호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으면 마을이 끝장났기 때문에 므두셀라는 그러한 뜻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므두셀라 그의 이름을 풀어서 설명하면 ‘그가 죽으면 세상의 끝이 온다’ 입니다. 다시 말해,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자마자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이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에녹과 므두셀라와 라맥과 노아는 믿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고 살아갈 때, 노아는 묵묵히 산 위에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 하나님 계신 하늘나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을 때, 노아처럼 묵묵히 믿으며, 방주와 같은 가정과 교회를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 안에 머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풍조에 따라 휩쓸려 살아가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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