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book
주일설교문(2024.07.28)_"먼저 그 나라와"(마태복음 6:25-34) 본문
지난 주는 레바논의 장태림 선교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고, 다음 주일인 8월 첫주에는 지난 7월 첫 주에 드렸던 온가족 예배를 다시 한번 드립니다. 아이들과 예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드립니다. 이것은 공동체적 시도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시도'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원래 시도라는 말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 성공의 확률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성인들은 ‘시도'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잃을 것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도 보다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지난 7월 첫 주 온가족예배를 드리고 목회자 셋이서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당연히 양쪽의 의견 모두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장점이 조금 더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아이들은 '평소 예배보다 더 좋았다, 재밌었다' 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도를 하는데는 나름대로 2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초대교회의 예배가 그랬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초대교회 때는 주일학교도 없고, 청소년 예배도 있었을리 만무하므로, 아마도 온 가족이 다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두번째로는 어린이는 어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교회에서는 분리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학습되어지고 익숙해져있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다시금 중심을 잡아보기 위해서 ‘시도' 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에 조금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함께 기쁨으로 ‘시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삶을 잘 돌아보면, 사실 ‘시도' 해보면 좋을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젊었을 때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에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젊은 교회입니다. 이제 2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시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시도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공확률을 높이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근거로 모여있는 무리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분을 믿는 믿음으로 함께 모여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활동들은 믿음에 기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에 기인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지난 주에 서울에 다녀왔을 때, 저희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습니다. 엄마는 연습하고, 저도 일을 좀 해야해서 주완이를 잠시 키즈카페에 데리고 간 것이죠. 키즈카페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가 무엇일까요?
“엄마!!!” “엄마~~~”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엄마를 부릅니다. 왜 부를까요? 아마도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 부름은 근본적으로 믿음에 기인합니다. 내가 부르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가 올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 근거해서 엄마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자기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 모든 엄마들은 귀신같이 그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어도, 소음이 무성해도, 내가 부르면 엄마가 들을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찬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고, 끝까지 나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관계의 믿음입니다.
제가 예전에 한 연구결과를 봤는데요, 왜 엄마는 아기의 울음 소리를 잘 들을까 하는 연구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 주파수가 성인과 다르다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른들의 소리보다 훨씬 멀리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아기 울음 소리가 실제로 잘 들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는 주파수가 '4' 를 넘어갑니다. 아주 먼 곳까지 소리가 전해질 수 있습니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 창조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놀랍게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출생한지 8일째에 남자아이들은 할례를 받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왜 8일째일까 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왠만하면 바로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피에는 피를 응고시키는 성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나도 조금 있으면 피가 응고되어 출혈이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갓난아이는 피를 응고시키는 성분이 태어나자마자는 굉장히 낮습니다. 그래서 지혈이 안됩니다. 그래서 출생하고 그 수치가 조금씩 올라가는데, 놀랍게도 태어난지 8일째가 되면 피를 응고시키는 그 성분이 일반 성인보다 높아집니다. 지혈이 훨씬 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서 성인과 같은 수치가 됩니다.
우리가 모두 알 수 없는 신비한 창조세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비하게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만 덩그러니 만들어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기 전에,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서서 오늘 본문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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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분 중에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만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자신이 18살 때, 용하다는 점쟁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길 20대에 죽을 인상이라고 했다는겁니다. 그래서 그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을 항상 불안함과 염려, 두려움 속에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군대 다녀와서 24살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에 그 동안의 모든 긴장이 한 순간에 녹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길 염려를 이겨내는 최고의 힘은 바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μεριμνάω'(메림나오)라고 하는데 이것의 뜻은 ‘마음이 나뉘어 지는 것' 입니다. 실제로 우리 마음 속에 염려가 들어오는 순간 우리 마음은 나뉘어 집니다. 생각도 마음도 나뉘어지고, 우리 삶은 균형을 잃게 됩니다. 역사를 보면 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염려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염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를 살펴보면,
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공중을 나는 새도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계신다면서, 우리들은 당연히 공중의 새들보다 귀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30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자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부족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입니다.
염려하지 않는 다는 것이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 바로 하나님을 믿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키즈카페에서 엄마를 외치는 아이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말합니다.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의 의,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영어로 4의 P로 시작하는 단어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1. 분명한 삶의 목적 (Purpose)
여행을 갈 때에도 행선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있는 여러 문제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믿는 자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잘 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차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주어'를 무엇으로 쓰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무엇이 될거고, 나는, 나는, 나는.. 생각과 마음이 온통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말을 많이 합니다. 누구는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는 무엇을 했고, 누구는, 누구는, 또 누구는 .. 생각과 마음이 온통 타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났던 신실한 사람은 ‘하나님은' 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실까,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하나님은, 하나님은, 그리고 하나님은…
주어를 무엇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우선순위 (Priority)
두 번째는 우선순위입니다. 우선순위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의 순서와 중요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먼저'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입니다.
예전에,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해외에서 굉장히 유명한 강사가 학교 예배에 왔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젊은 신학 전공 교수님이 질문을 합니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 그 강사의 입에서 뜻 밖의 대답이 나옵니다.
“한국교회는 더이상 교회 건축이나 성장에만 몰두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외형주의'라고 합니다. 유교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들은 옛날 양반 문화, 비가 와도 뛰어가지 않았습니다. 실리보다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들이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여질것인가에 신경을 씁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에 연말이 되면 교단에 교회현황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교회 출석 수를 적어서 교세 현황표를 작성해서 교단에 보내는겁니다. 제가 나름 숫자에 강합니다. 숫자를 정확하게 셉니다. 예배 참석 인원을 뒤에 서서 오차 없이 정확하게 세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출석현황표를 작성했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숫자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다시 작성해오세요."
그래서 다시 세어봤습니다.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숫자가 잘못된 것 같다며 다시 작성해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다시 세어봐도 제가 기록한 숫자가 맞는 숫자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작성할게 없고 정확한 숫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도 다시 작성해오라면서 평소보다 적다고 말하는겁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대들었습니다.
"이 인원이 정확합니다. 지난 3개월간 평균적으로 이 숫자가 맞습니다."
그러자 당시 담임목사였던 그 분이 저를 답답하다는듯이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숫자를 다 더해서 가지고 오세요." 라고 말합니다. 당시 예배인원이 1부, 2부, 3부 모두 합쳐서 대략 6백명 정도였는데, 결국은 교인 2천명으로 보고를 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과연 무엇이 먼저입니까?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시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은, 성도는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어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Simple 하지 않으면 Sinful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려요소가 너무 많으면 유혹을 많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단순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한 부잣집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교인들과 목사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유아세례를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이의 유아세례를 위해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아기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코트를 벗어서 아기침대에 걸어둡니다. 그런데 아기가 움직이다가 그 코트가 떨어져서 아기를 덮어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온 사람들은 거기에 코트를 벗으면 되는 줄 알고 그 코트 위에 자신의 코트를 올려놨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코트가 쌓입니다. 나중에 유아세례를 위해서 아기를 찾는데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 사이 아기는 무거운 코트들에 짓눌려 질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유아세례를 위해서 모였는데, 그 주인공인 유아없이 사람들이 웃고 떠들다가 결국은 그 유아마저 잃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우리 예배가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우리끼리 즐거운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 삶이 이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내가 원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우선순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분명한 계획 (Plan)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인생계획을 세웁니다. 내가 20대에는 뭘하고, 30대에는 뭘하고, 40대에는 뭘하고, 50대에는 뭘하고, 60대에는 뭘하고, 70대에는 뭘하고 80대에는 뭘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계획은 무엇인가요? 내가 50대가 되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할것인가? 계획해보신 분 계신가요? 내가 60대가 되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우리 인생이 조금씩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분명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우리 가정에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를 물어야 합니다.
4. 간절한 기도 (Prayer)
그래서 마지막은 바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됩니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매년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운동해야지, 올해는 살을 빼야지, 올해는 책을 읽어야지. 이런 다짐들이 잘 지켜지고 있나요?
지난 12월이죠. 마이클이 위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둘째 수빈이가 저희 아이랑 같은 나이니까 제가 걱정이 너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마이클이 말합니다.
"저 운동화 샀어요. 싸워 이길거에요. 목사님도 운동하세요. 운동화 하나 사드릴까요?"
오늘 7월 마지막 주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12월과 체중은 똑같고, 저는 그냥 운동화만 샀을 뿐입니다. 결국 우리 힘으로는 잘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죠. 주님 앞에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희 부부가 만났던 교회가 뉴욕 맨하탄에 있었는데요, 그 바로 옆 걸어서 5분거리에 리버사이드교회라고 아주 멋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어떻게 지어졌는가 하면, 우리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사람, 록펠러라는 사람이 봉헌한 교회입니다. 그러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회사를 소유했습니다. 53세에 세계 최대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점점 살이 빠져갑니다. 너무 바빴던 그는 치료의 좋은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일년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그 날부터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매일 매일이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칩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 살았다! 진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그 때부터 그는 달라졌습니다. 교회만 왔다갔다 하던 그는 정말 신실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의사가 55세를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98세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옮겼더니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입니다.
[결론]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너무나도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이, 오늘 성경 본문과 같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구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공중의 나는 새와, 길가에 피어난 들풀처럼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묻고 듣고 순종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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