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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_"은혜 아니면" (출애굽기 13:21-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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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문_"은혜 아니면" (출애굽기 13:21-22)

Jake's Blog 2024. 6. 3. 00:56

21.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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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공식적인 예배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어제 시간을 내서 이곳에 와서 함께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예배처소를 옮긴 첫 주를 위해서 함께 섬겨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음과 정성, 그리고 물질의 헌신으로 교회를 섬겨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새로운 장소에서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제 이곳에서 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조금 당황스런 일을 겪었습니다. 제가 항상 사용하는 컴퓨터가 작동을 하지 않는겁니다. 그래서 배터리가 방전되었다고 생각해서 오랜시간 동안 충전기를 꼽아놓았습니다. 아무리 충전을 해도 켜지질 않았습니다. 설교준비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컴퓨터가 켜지질 않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겁니다. 신목사님과 임목사님 셋이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제가 메세지를 남겼더니, 임목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해요? 컴퓨터를 지금이라도 빌려드릴까요?” 그 때 시간이 밤 9시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하나 고장났더니, 할일이 멈춰버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인간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고해도, 무언가 하나만 없어져 버리면 당황하는 그러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이 더욱 필요하고,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예전에 한 조사 기관에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본 적이 있는지 설문 통계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조사의 구체적 조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절반 가까이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본 적이 있다는 통계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3명 중 한명 정도는 점을 봤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앞날이 불안하여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보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은 과연 나의 삶의 현장 속에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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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출애굽기를 살펴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그들에겐,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계시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놀랍고 신비한 일들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본문은 그 중 하나인 구름 기둥·불기둥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름 기둥·불기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구름 기둥·불기둥은 하나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름', '불'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징입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불과 연기 가운데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출 19:18). 모세도 떨기나무에서의 불꽃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다시 말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께서 지금 이 곳에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둘째로, 구름 기둥·불기둥은 하나님의 보호를 뜻합니다 

제가 아프리카 있을 때,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미비아’라는 나라입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멋진 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방송매체에서 보는 사막에서 찍은 광고들 대부분은 나미비아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미비아’를 가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선교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게 사진으로 보면 멋져 보이는데, 직접 가보면 좀 다릅니다. 그늘이 없다는 것이죠. 사막 위에서 한 시간만 햇볕에 노출되어도 탈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갈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되도록 가지 않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래서 사막의 기후를 직접 체험해보진 않았지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는 광야가 바로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물이 필요하고 절대적으로 쉴 곳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다른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물을 주신 본문도 나타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기둥이라는 것은 그들을 쉬게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구름기둥 아래에서 쉼을 가지고 태양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다고 합니다. 일교차가 굉장히 심한 곳입니다. 그 때는 불 기둥으로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캠핑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닥불 하나만 피워놓아도 추운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불기둥을 통해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사막의 밤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밤에는 독사와 전갈 등의 위험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불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사막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때론 물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합니다.

 

셋째, 구름 기둥·불기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나타냅니다.

당시 중대한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사형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군인들도 쫓다가 광야로 도망가면 그만 쫓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죽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도 없고, 독사, 전갈 등으로 위험이 가득한데, 방향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방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밤에 북극성을 보고 위치를 아는 것인데요, 아침에 일어나면, 바람 때문에 모래가 날리고 지형이 모두 변해서 다시 방향을 알 수가 없게 된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이것은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길을 찾아서 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구름기둥, 불기둥의 역할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 여름의 그늘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모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지난 달에 저희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 한 후에 첫 운동회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라서 형 누나들과 다 함께 청군 백군을 나누어서 운동회를 하니까 아이가 너무 들떴습니다. 만 5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팀을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 것이니, 마음가짐은 거의 올림픽 대표선수가 된 느낌입니다. 학급에서 나름 좀 빨리 뛰는 편이었는지 유치원 6세반 계주 선수로 뽑혀서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달리기 대표가 참가하는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이어달리기 선수로 출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아주 맑았습니다. 햇볕이 따스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에 끝나는데 오전에 있던 그늘이 오후가 되자 다른 쪽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학부모들은 마치 광야의 이주민처럼, 그늘을 따라서 이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 놀러가서 주차장만 가도, 그늘 주차장으로 차들이 몰립니다. 햇볕 아래 그늘은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구름기둥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을 보내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구름 그늘 아래 들어가기 위해서 이동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방향을 모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광야를 걸어갔습니다.

때로 우리 삶에도 방향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름기둥을 기다려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가기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고 인도하시는 징표를 따라서 나아가보는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더디게 느껴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기 때문에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글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오직 섭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연과 확률은 한 짝입니다. 우연의 과학적 표현이 확률일 뿐입니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는 믿음 안에서 우리를 그 분의 장엄한 계획과 존재 안으로 초대하시기 위해 오늘도 우주만물을 돌리고 계시다는 확신이 무의식 안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의미를 의식하는 것이 낯설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낯선 방식으로 다가와서 우리가 때론 거부하고, 때론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430년간의 애굽 종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섬길 자유를 받아,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입성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방향을 바꾸어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출 13:17~18). 저들은 '숙곳'에서 발행한 후 '에담'이란 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때 갑자기 구름 기둥·불기둥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위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광야는 사망과 생명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방향을 알 수 없고, 모래바람으로 길을 헤매고, 물과 음식이 없고, 독사와 전갈 등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 주변이 온통 사망의 기운이 도사리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나의 의지를 발휘하면 할 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넷째, 구름 기둥·불기둥은 오늘의 신약 교회의 예표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구름/불 기둥이 이동하다가 시내산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년을 머물렀습니다. 시내산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나요? 십계명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구름기둥을 따라가다가 멈춘 곳에서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정박하거나, 아니면 인간적인 생각으로 나아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으로 나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저는 어디에 살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뉴저지, 뉴욕, 그리고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보스톤 등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제주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지역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더니,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을 때,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을 한 곳에서 정착하여 떠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이 일어날 확률이 적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유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분이 없는 불법체류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 17세가 넘았는데 만일 계속해서 걸어다닌다면 대부분은 불법체류자(요즘에는 이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로, 그 의미는 법적 체류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쉽사리 자신의 지역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만난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엄청 잘했다고 합니다. SAT를 봤는데 성적도 꽤나 잘 나왔다고 합니다. 소위 아이비리그를 노려볼만한 성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디에 갔느냐면 뉴저지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를 갔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란, 지역 2년제 전문대로 때론 시험 성적이 없어도 가는 곳입니다. 당시 불법체류자들은 정식으로 대학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당시 운전면허가 있었는데 뉴저지에 살고 있지만, 시카고 면허였습니다. 브로커를 통해 구한 운전면허인데, 타주 면허로 보험이 엄청 비쌌습니다. 그러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지역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 이면에는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동하지 않습니다. 괜히 이동했다가 어떤 위험에라도 빠지게 될까봐 그 자리, 자신만의 안전한 장소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만의 안전지대, 곧 'Comfort Zone'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때로는 나의 성향, 직업 등에서도 변화가 두려운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무조건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나에게 익숙한 것만을 고수하다보면, 자칫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 예배에 가끔씩 오시는 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수지에서 살고 계신데, 제주도를 자주 오셔서, 오실 때마다 저희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 분이 섬기는 교회 이름이 ‘움직이는 교회’라고 합니다. 나름 파격적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모든 순간을 통해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있는 교회이자 곧,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우리는 과감히 우리의 안전지대를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우리를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 불기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이동시킨 하나님의 손길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바로 ‘은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신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22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그들 민족의 구원을 의미한 것입니다. 애굽은 불신앙의 이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기 위하여 구름 기둥·불기둥을 인도하심의 수단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만약 단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은혜' 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들, 계획들 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분의 손길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은혜가 마르지 않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으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았던 시내산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우리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가는 믿음의 발걸음으로 걸으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새로운 예배 장소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찬양 시간에 정말 마음껏 찬양하는 신목사님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변이 조용한, 아름다운 자연으로 펼쳐진 새로운 예배환경에서 정말로 마음껏 뛰며 목청을 높여 찬양하는 모습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마음껏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은혜를 따라 나아가며,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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